500년 된 정부 기록을 AI가 읽게 만들어봤습니다.(Ai readable 관보 프로젝트)
조선시대에 ‘기별’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승정원에서 그날의 국정 소식을 정리하면, 각 관청에서 파견된 기별서리들이 그걸 손으로 베껴 써서 가져갔습니다. 왕의 전교, 인사발령, 상소와 비답, 지방관의 보고, 심지어 ‘네 발 달린 병아리가 태어났다’는 기사까지. 조보(朝報)라고 불린 이것은 적어도 중종 때(1520년)부터 기록이 확인되고, 고종 때까지 약 370년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조보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배포 대상은 삼공·판서·감사·절도사 등 고급 관리로 한정되어 있었고, 일반 백성은 물론 하급 관리도 공식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국정 정보는 통치의 도구였지, 시민의 권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보는 막으려 해도 흘렀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기별서리에게 돈을 주고 조보를 입수하는 양반이 늘었고, 심지어 바다 건너 오사카에서 조선 과거 합격자를 알아낸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77년, 마침내 민간에서 활판인쇄로 찍은 ‘민간조보’가 등장합니다. 관이 아닌 민간이, 정보에 대한 욕구로 만들어낸 최초의 인쇄 관보였습니다. 독일의 세계 최초 일간신문이라는 아이코멘데 차이퉁(1650년)보다 73년 앞선 것입니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속담의 그 기별이 바로 조보의 다른 이름입니다. 소식이 안 온다는 뜻이 될 만큼, 조보는 당시 정보 유통의 핵심 채널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관보의 역사는 세 번의 문턱을 넘는 과정이었습니다.
첫 번째 문턱은 누가 볼 수 있는가였습니다.
갑오개혁(1894년)과 함께 조보는 근대적 ‘관보’로 바뀌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관보가 재창간됩니다. 관보 제1호의 발행일자는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입니다. 임시정부 수립 1919년을 원년으로 잡은 것이고, 거기에 실린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로 시작합니다. 관보 첫 페이지가 곧 건국의 선언이었습니다.
관보가 뭔지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법령은 정부가 정한 규칙이고, 관보는 그 규칙을 정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 모든 행위의 기록입니다. 오늘 어떤 법률을 공포했고, 누구를 어디에 임명했고, 어떤 사업을 고시했고, 어떤 공직자의 재산이 얼마인지. 정부가 ‘했다’고 선언하는 일은 관보에 실려야 비로소 한 것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조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의 전교, 관리의 인사, 상소와 비답, 지방관의 보고 — 조보에 실린 것도 결국 조정이 그날 한 일의 기록이었습니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관보의 본질은 같습니다. 국가가 한 일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효력을 부여하는 장치. 기록되지 않은 행위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보가 소수 고급 관리의 전유물이던 시절을 지나, 민간조보가 그 벽을 깨려 했고, 선조 때 의정부와 사헌부에서 공식 활자 인쇄를 허락했다가 기밀 유출 우려로 다시 필사로 돌아간 적도 있습니다. 정보를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를 두고 조정 안에서도 갈등이 있었던 겁니다. 2001년부터 전자관보가 온라인으로 제공되면서, 적어도 원칙상으로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첫 번째 문턱이 넘어졌습니다.
두 번째 문턱은 어떤 형태로 보는가였습니다.
조보는 기별서리가 초서체로 빠르게 베껴 쓴 필사본이었습니다. 글씨를 너무 못 써서 탄핵당한 기자(1600년)도 있었다고 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양을 필사해야 했으니 글씨가 알아보기 어려웠고, 베끼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매체가 바뀔 때마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초서체 필사 → 활판인쇄(1577 민간조보) →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1963) → 한글전용(1969) → 종이에서 전자관보(2001). 각각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구의 확장이었습니다.
세 번째 문턱은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기계가 읽을 수 있는가 입니다.
현재 전자관보는 PDF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gwanbo.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PDF로만 제공하는 것은 위변조 방지 목적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국가 공식 기록의 원본성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는 타당합니다.
다만 관보는 이미 공개된 데이터입니다. 비밀이 아닙니다. 저작권법 제7조에 따라 자유 이용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원본 PDF는 그대로 두되, 같은 내용을 기계가 읽기 쉬운 형태로 한 벌 더 만들어두면 어떨까.
기록되지 않은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기계가 읽지 못하는 기록은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파일 형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그 간극을 좁힐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문턱을 넘으려는 시도
저는 중앙부처 행정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PGR에 합격 수기를 남긴게 어제 같은데 벌써 몇년이 흘렀네요. 관보를 가끔 찾아보는데, 매번 PDF를 열어서 눈으로 훑는 게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 1월부터 2026년 4월까지의 관보 약 128,000건을 마크다운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PDF에서 텍스트를 추출하는 OCR에는 한글과컴퓨터에서 만든 오픈소스 도구인 오픈데이터로더(opendataloader)를 사용했습니다. 외산 상용 OCR 대신 이걸 선택한 건 의도적이었습니다. 관보라는 공공 데이터를 다루는 작업이니, 도구도 국산 오픈소스 위에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환 과정에서 ‘위’가 ‘옄’이 되고, ‘번’이 ‘뮈’가 되는 식으로 깨지는 글자가 있었습니다. 이건 사전 기반 보정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고쳤습니다. 초기에 단일 글자를 무작정 전역 치환했다가 ‘모친동산’ 같은 과보정 사고가 나서, 지금은 1,000개 이상 샘플에서 이웃 글자 분포를 확인한 뒤에만 전역 치환을 허용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오픈데이터로더 자체가 발전하면 깨진 글자도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보정 사전도 더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도구가 좋아지면 코퍼스도 같이 좋아지는 구조입니다.
정적 HTML 리더도 만들었습니다. 날짜별·기관별로 탐색하고, 인라인으로 본문을 읽을 수 있고, 정적 JSON 인덱스를 외부에서 fetch해서 RAG나 임베딩 파이프라인에 바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라이브 리더: https://hosungseo.github.io/ai-readable-gazette-kr/
GitHub: https://github.com/hosungseo/ai-readable-gazette-kr
관보의 미래
앞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AI 에이전트를 갖게 될 겁니다. 그 에이전트는 법령을 요약해주고, 인사발령을 비교해주고, 복잡한 행정 자료를 자기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어떤 에이전트는 학생에게 맞게 쉽게 풀어주고, 어떤 에이전트는 기자에게 핵심 쟁점만 뽑아주고, 어떤 에이전트는 공무원에게 조문 비교를 중심으로 정리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는 원천 데이터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읽기 좋은 화면은 그 위에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AI가 읽을 수 있는 구조는 한 번 잘 깔아놔야 합니다. 정부가 모든 사람을 위한 완벽한 화면을 하나씩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다양한 에이전트가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구조화된 공공 자산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보가 승정원 고급 관리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민간이 돈을 주고 사보고, 활판으로 찍어내고, 근대 관보가 되고, 전자관보가 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되기까지 500년이 걸렸습니다.
세 번째 문턱은 생각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이미 공개된 것을 구조화하는 일이니까요.
정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 공개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AI-readable이 함께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