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리터터시 대신 행정 리터러시, 우리나라 제도 100개를 한장씩 구조도로 만들어봤습니다.

https://hosungseo.github.io/korea100/

얼마 전 유튜브 슈카월드의 알상무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퇴사 이유가 재밌었는데, 여의도 금융 용어가 일반인들한테 너무 어려워서 금융과 대중 사이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보겠다는 거였습니다. 듣다 보니 남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매일 보는 행정이 딱 그렇기 때문입니다.

행정은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허가와 신고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게 그거 아닌가 싶겠지만 행정에서는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허가는 원래 하면 안 되는 걸 행정청이 해도 된다고 풀어주는 거고, 신고는 원래 해도 되는 걸 한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어떤 신고는 행정청이 ‘수리’를 해줘야 효력이 생깁니다. 행정법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직제, 처분, 협의, 통보, 시달 같은 단어들도 그렇습니다. 하나하나는 한국어인데 조합되는 순간 외국어가 됩니다. “직제 개정 협의 결과를 시달받았다. 처분 기준을 고시했다” 같은 문장은 행정 밖의 사람이 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게 국민한테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공무원한테도 어렵습니다. 신규 공무원이 들어오면 두툼한 업무편람을 받고 “이 제도 이제 네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 편람을 다 읽어도 이 제도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느 기관을 거치고 돈은 어디서 나와서 마지막에 국민한테 뭐가 도착하는지, 전체 그림은 잘 안 그려집니다. 그 그림은 보통 전임자 머릿속에 있고, 전임자는 이미 다른 부서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봤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제도 100개를 고르고, 인공지능(Claude Fable)을 활용해 하나씩 업무체계도로 그렸습니다. 기업을 분석할 때는 다들 비즈니스 모델을 보는데, 국가 제도를 볼 때는 법조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도에도 그런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한 장을 펼치면 법적 근거가 뭔지, 등장인물이 누군지, 절차가 몇 단계인지, 돈과 문서가 어디로 흐르는지, 그리고 어디서 막히는지가 보이는 그림입니다.

요즘 AI 리터러시라는 말이 유행인데, 이건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국민이 AI를 배우자는 게 아니라, AI한테 행정을 국민의 언어로 번역시키자는 쪽에 가깝습니다. AI로 행정 리터러시를 높이는 겁니다. 100개 제도의 법령을 사람이 읽고 그림으로 옮기려면 몇 달이 걸릴 텐데, AI 덕분에 행정직 공무원 한 명이 퇴근 후에 해볼 만한 일이 됐습니다.

조금 다듬으면 행정 내부와 일반 국민 모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국무조정실은 새 규제가 생기면 그게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점검하는 일을 하는데, 규제 하나가 몇 개 기관을 거치는지 구조도로 보면 복잡도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이 규제는 좀 복잡합니다”라는 보고서 문장과, 실제로 스파게티처럼 얽힌 그림을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각 부처 장관 입장에서도 유용합니다. 내가 맡은 부처의 제도가 어디서 병목인지, 그게 우리 부처 문제인지 협의 상대 기관 문제인지 그림 위에서 짚을 수 있습니다.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려면 어느 지점을 바꿔야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고요.

국민 입장에서는 내가 넣은 건축허가가 대체 어떤 절차를 거치는 건지, 어디쯤에서 막히기 쉬운지 볼 수 있고요. 언젠가 국민신문고나 원스톱 민원처리 서비스랑 연계되면 내 민원이 지금 구조도 어느 칸에 며칠째 서 있는지 택배 조회하듯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합니다. 택배는 되는데 민원이 안 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AI로 그럴듯한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파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저는 행정사무관이고, 하고 싶은 건 좀 다릅니다. 암묵지로 가득한 행정을 조금 더 투명하게 여는 것입니다. 행정이 정보를 숨긴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법령도 절차도 예산도 이미 다 공개돼 있습니다. 다만 공개돼 있어도 암묵지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인공지능 시대에 그 문턱이 극단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믿는 쪽입니다. 행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바로 이해되는 수준까지요. 이제는 그게 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지금은 100개입니다만 메일을 통해 접수를 받아서 늘려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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