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인수인계의 다음 단계는 AI 위키다
전자적 인수인계가 양식의 디지털화에 머물렀다면, AI 에이전트와 위키는 후임자와 신규 공무원이 실제로 적응하는 데 필요한 맥락과 암묵지를 조직 자산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전자적 인수인계가 양식의 디지털화에 머물렀다면, AI 에이전트와 위키는 후임자와 신규 공무원이 실제로 적응하는 데 필요한 맥락과 암묵지를 조직 자산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최근 안드레이 카파시가 LLM과 wiki를 연결한 방식이 큰 충격을 준 이유는 단순히 기술이 새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AI가 일회성 답변 기계에 머무르지 않고, 지식을 축적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는 작업환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공직사회에도 아주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사회의 큰 난제 가운데 하나는 늘 인수인계입니다. 전보가 잦고, 담당은 자주 바뀌고, 업무는 복잡하고, 실제로 중요한 정보일수록 공식 문서보다 사람 머릿속과 메신저와 개인 메모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후임자는 전임자의 파일을 받아도 핵심 맥락을 놓치기 쉽고, 신규 공무원은 표면적인 규정은 배워도 실제로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한참 뒤에야 감을 잡습니다.
행안부도 이 문제를 오래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기존의 종이·구두 중심 업무 인계․인수를 온-나라 문서 시스템 기반의 전자적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중앙부처 공무원 업무 인계․인수 실태조사에서는 시스템 이용률이 5%에 그쳤고, 대상자의 95%가 여전히 서면 방식으로 인계․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의식은 정확했습니다. 인수인계를 전자적으로 남기고, 주요사항 누락을 줄이고, 행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방향 자체는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도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이유도 함께 봐야 합니다.
형식을 전자화하는 것만으로는 맥락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업무관리시스템이나 전자문서시스템에 인계 문서를 남겨도, 실제 후임자가 알고 싶은 것은 목록을 넘어선 작업 맥락입니다. 이 업무가 왜 중요한지, 어디서 자주 막히는지, 누구와 어떻게 협의해야 하는지, 어떤 표현은 조심해야 하는지, 지난번에는 왜 이 선택을 했는지 같은 암묵지가 함께 필요합니다. 인수인계의 핵심은 살아 있는 작업 맥락인데, 기존 전자적 인계 방식은 대개 종이 양식을 화면으로 옮겨놓는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후임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신규 공무원에게는 더 크게 작용합니다.
몇 년 전 춘천시가 신규 공무원들의 업무 적응력과 자긍심을 높이겠다며 나무심기 행사를 열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비판의 요지는 단순했습니다. 신입 공무원이 떠나는 이유를 상징 행사로 덮지 말고, 실제로 왜 적응이 어려운지부터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적은 꽤 정확합니다. 신규 공무원이 힘들어하는 이유에는 소속감 문제도 있지만, 더 직접적인 병목은 맥락 없는 업무 진입입니다. 문서는 많은데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고, 규정은 있는데 실제 흐름은 다르고, 질문할 사람은 바쁘고, 반복되는 실수는 매번 개인의 시행착오로 처리됩니다.
그래서 저는 공직사회 인수인계의 다음 단계가 AI 위키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 개개인에게 보급된 AI 에이전트는 해당 공무원의 업무 산출물과 수정 이력과 질문 흐름을 단순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부서가 다시 읽을 수 있는 지식 위키로 구조화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 초안, 검토 메모, 자주 받는 질의, 협의 포인트, 법령 해석의 맥락, 실패 사례, 다음 담당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체크리스트를 계속 축적하는 것입니다.
이 구조가 생기면 인수인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후임자는 파일 묶음만 받는 수준을 넘어, 전임자의 업무 맥락이 구조화된 위키를 함께 넘겨받게 됩니다. 어떤 일이 반복되는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함정인지, 어떤 문서를 먼저 읽어야 하는지, 어떤 판단이 왜 내려졌는지가 하나의 지식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이 거의 전임자가 떠나지 않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신규 공무원에게는 더 큰 변화가 생깁니다.
AI 에이전트가 생성한 위키는 개인 단위에서 멈추지 않고 부서 단위, 나아가 부처 단위로 축적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입은 선배 한 명의 설명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조직이 축적해 온 암묵지와 맥락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자주 쓰는 문서 구조, 보고의 흐름, 협의 포인트, 민감한 표현, 반복되는 쟁점, 실무적으로 중요한 예외가 다층적으로 쌓일 수 있습니다. 기존 온보딩이 “사람을 붙여서 배우게 하는 방식”에 크게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위키를 통해 먼저 맥락을 익히고 AI에게 질문하며 따라가는 방식이 가능해집니다.
이건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닙니다. 행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높이는 구조입니다.
업무가 사람과 함께 증발하지 않고 남게 되고, 인수인계의 품질 편차가 줄어들고, 신규 공무원의 적응 속도도 빨라질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이 자기 업무의 암묵지를 자산으로 쌓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유능한 담당자가 떠나면 그 사람의 노하우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I 에이전트와 위키가 결합하면, 그 노하우는 더 이상 개인의 메모 습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직의 학습 자산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결국 질문은 이겁니다.
공직사회의 인수인계 문제를 양식의 전자화 수준에서 계속 다룰 것인가, 아니면 지식의 축적 구조로 한 단계 올릴 것인가.
저는 후자가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문서 시스템은 제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위키는 사람이 실제로 적응하고 이어받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공직사회 인수인계는 단순히 전자적으로 남기는 것을 넘어, AI 에이전트가 함께 쓰고 계속 자라나는 위키형 구조로 가야 합니다.
그 전환이 이루어질 때, 후임자는 덜 헤매고 신입은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